분류 전체보기 1157

천문도 & 해설책 #조선시대 17세기? 천문 현상은 제왕의 정치행위에 대한 하늘의 메시지로 믿어졌다.

#천문도 & 해설책 #조선시대 17세기? 천문 현상은 제왕의 정치행위에 대한 하늘의 메시지로 믿어졌다. 제왕은 천문 변화를 단서로 올바른 정치를 펼치기 위해서, 천문 현상을 정확히 알아야 했다. 이를 알기 위해서 천체 관측 결과를 표준화한 것이 천문도이다. 고구려 천문도 고구려가 처음으로 천문도를 돌에 새겼다고 전해진다. 그 인쇄본이 조선까지 계승된 것으로 보인다. 고구려인들이 가졌던 천문에 대한 이해는 고분벽화에 잘 나타나 있다. 신라 신라 효소왕 1년(692)에 승려 도증이 당에서 돌아올 때 천문도를 가지고 왔다는 기록이 있다. 백제 기록은 없지만, 백제 또한 천문에 대한 지식은 상당한 수준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고려 오윤부가 천문도를 작성했다는 기록은 있으나, 전해지는 천문도는 없다. 이를 볼 때..

카테고리 없음 2024.06.20

# 한석봉(韓石峯1543~1605) 은 조선의 서예가이다. 본명은 한호(韓濩), 석봉은 호이다.

# 한석봉(韓石峯1543~1605) 은 조선의 서예가이다. 본명은 한호(韓濩), 석봉은 호이다. 글씨를 잘 써서 국가의 여러 문서와 명나라에 보내는 외교문서를 도맡아 썼으며, 중국에 사절이 갈 때도 서사관으로 파견되었다. 선조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으며, 왕세정·주지번 등 중국인들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그의 서법은 조선 초기부터 성행하던 조맹부의 서체인 송설체를 따르지 않고 왕희지의 안본을 임모해서 배운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원첩과 거리가 있는 것들이었기 때문에 진당인의 높고 굳센 기운이 결핍되었다. 또 사자관으로 오랫동안 있어 틀에 맞추려는 듯한 글씨를 만들게 되어 서품이 낮고 격조와 운치가 결여되어 외형의 미만을 다듬는 데 그쳤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글씨의 짜임새가 좋고 필력도 있어 일세를..

카테고리 없음 2024.06.19

#신원(信園) 이의양(李義養 1768~?) 본관은 안산(安山). 자는 이신(爾信), 호는 신원(信園)

#이의양(李義養 1768~?) 본관은 안산(安山). 자는 이신(爾信), 호는 신원(信園)·운재(雲齋) 또는 팔송관(八松觀). 역관으로 봉사를 지낸 이학수(李學洙)의 아들이며, 이한철(李漢喆)의 아버지이다. 1811년(순조 11) 조선시대 마지막 통신사행의 수행화원으로 일본 대마도에 다녀왔다. 1819년(순조 19)에 이수민(李壽民)·김화종(金和鍾) 등 여러 화원들과 함께 「문조신정후가례반차도(文祖神貞后嘉禮班次圖)」 제작에 참여하였다. 『고화비고(古畫備考)』에 의하면, 산수를 잘 그리고 송호도(松虎圖)에 뛰어났다고 한다. 대표작으로 우리나라와 연경(燕京)간의 명승유적과 대마도 주변을 묘사한 『사생첩(寫生帖)』(간송미술관 소장)이 있는데, 전반적으로 형식화의 경향을 드러내고 있다. 이 밖의 작품들도 대체로 ..

카테고리 없음 2024.06.17

#공재 윤두서 (恭齋 尹斗緖 1668~1715) 본관 해남. 자는 효언, 호는 공재. 고산 윤선도의 증손이자 다산 정약용의 외증조이다.

#공재 윤두서 (恭齋 尹斗緖 1668~1715) 본관 해남. 자는 효언, 호는 공재. 고산 윤선도의 증손이자 다산 정약용의 외증조이다. 장남인 윤덕희와 손자인 윤용도 화업을 계승하여 3대가 화가가문. 말과 인물화를 잘그림. 낙관; 공재 #류하마도(柳下馬圖) #낙서(駱西) 윤덕희(尹德熙 1685-1776) ; 고산 윤선도의 현손. 윤두서의 맏아들. '无人筆意(무인필의?)' 경신년중추 (1740). 父子간의 말그림과 버드나무와 말갈기, 꼬리털의 바람 흔들림을 보면 너무도 아름답지요~^^

카테고리 없음 2024.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