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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구치는 여인 #길진섭(吉鎭燮 1907~1975) #캔버스에 유채 1960. 08. 58cm × 86.5cm

#장구치는 여인 #길진섭(吉鎭燮 1907~1975) #캔버스에 유채 1960.08. 58cm × 86.5cm ♧길진섭(吉鎭燮)은 1907년 평양에서 출생하였다. 3 · 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인 길선주(吉善宙) 목사의 아들이다.1921년 평양 숭실중학교에 입학한 후 미술에 뜻을 두고 서울에 올라와 미술수업을 받았다. 이 시기 「풍경」(1921), 「얼굴」(1921), 「자화상」(1924), 「대동강이 바라보이는 풍경」(1925) 등을 서화협회전람회에 출품하였다.1932년 일본 동경미술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한 뒤 서울에 정착하였고, 1934년 이종우(李鍾禹), 장발(張勃), 구본웅(具本雄), 김용준(金瑢俊) 등과 양화단체 목일회(牧日會, 1937년 목시회로 개칭)를 조직하고 전람회를..

카테고리 없음 2026.09.23

#누드 1, 2 #박영선(朴泳善 1910~1994 ) #종이에 목탄 ♤박영선(朴泳善)은 평양출신이다. 1931년 조선미술전람회를 통해 등단한

#누드 1, 2#박영선(朴泳善 1910~1994 )#종이에 목탄 ♤박영선(朴泳善)은 평양출신이다. 1931년 조선미술전람회를 통해 등단한 뒤, 일본에 유학해 가와바타 미술학교를 졸업했다.일제강점기 말기에 한국과 일본의 서양화가들이 공동 결성한 단광회에 가입해 활동하였고, 호전적인 미술 작품을 전시한 결전미술전에 작품을 출품했다. 이로 인해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가운데 미술 부문에 포함되었다.광복 후인 1946년 좌익 계열 미술인 모임인 조선미술가동맹이 김주경을 중앙집행위원장으로 추대해 결성되었을 때 중앙집행위원과 회화부 위원장을 맡았으나, 이후 조선미술가동맹이 조선미술동맹으로 개편되는 과정에서 정치 논리가 미술에 개입하는데 대하여 반대하고 순수미술을 옹호하여 우파..

카테고리 없음 2026.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