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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도 & 해설책 #조선시대 17세기? 천문 현상은 제왕의 정치행위에 대한 하늘의 메시지로 믿어졌다.

유담강 2024. 6. 20. 08:53

#천문도 &  해설책
#조선시대  17세기?

천문 현상은 제왕의 정치행위에 대한 하늘의 메시지로 믿어졌다. 제왕은 천문 변화를 단서로 올바른 정치를 펼치기 위해서, 천문 현상을 정확히 알아야 했다. 이를 알기 위해서 천체 관측 결과를 표준화한 것이 천문도이다.

고구려 천문도
고구려가 처음으로 천문도를 돌에 새겼다고 전해진다. 그 인쇄본이 조선까지 계승된 것으로 보인다.
고구려인들이 가졌던 천문에 대한 이해는 고분벽화에 잘 나타나 있다.
신라
신라 효소왕 1년(692)에 승려 도증이 당에서 돌아올 때 천문도를 가지고 왔다는 기록이 있다.
백제
기록은 없지만, 백제 또한 천문에 대한 지식은 상당한 수준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고려
오윤부가 천문도를 작성했다는 기록은 있으나, 전해지는 천문도는 없다.
이를 볼 때 평양성에 있었던 고구려 천문도는 사라졌다 해도 그 전통은 고려에 계승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3.조선 태조,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만들다
이성계가 받은 천문도를 돌에 새기게 하다
아마도 이성계가 받아 든 천문도는 고구려 천문도일 것이다. 이성계는 서운관에 명하여 이를 돌에 새기게 하였다.
그런데 서운관은 이 천문도를 돌에다 그대로 새기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하였다. 세차 운동에 의해 별의 위치가 고구려 때와 달라졌기 때문이다.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에 새겨진 별자리
바뀐 별의 위치를 반영한 천문도(천상열차분야지도)를 만들다
지구는 자전축이 기울어진 상태에서 회전하므로 세차운동이 발생한다. 1년이 지나면 관측별은 동쪽으로 약간 이동해 있기 때문에 관측의 기준이 되는 별의 위치가 세월이 흐르면서 변하게 된다.
그러므로 계절에 따라 관측되는 별의 위치가 바뀐 오차를 새롭게 수정할 필요가 있었다.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 상단 부분
예를 들어 고구려 천문도에서는 입춘 날에 ‘묘수’라는 별이 남중(자오선을 통과)했지만, 조선 태조 때의 입춘 날에는 ‘위수’라는 별이 남중하였다.
결국 서운관은 고구려 천문도 스타일을 그대로 고수하면서, 남중하는 별자리만을 수정하여, 천문도를 제작하였는데 이것이 조선 태조 4년에 만든 ‘천상열차분야지도’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