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환기(金煥基)
호는 수화(樹話) (1913~1974)
부인은 김향안(金鄕岸) (1916~2004 / 1944년 결혼)
#부부(夫婦) 자화상
#종이에 목탄
#1955년 12월 20일
♡대한민국의 추상미술의 선구자이자, 20세기 한국 현대 미술, 특히 단색화를 대표하는 화가.
한국의 산천과 하늘, 달과 구름, 백자와 전통무늬 등 매우 한국적인 소재를 가지고 점점 추상화시켜 점, 선, 면으로 이를 나타내는 전면점화를 그렸다.
초기에는 기하학적인 추상에서 출발하여 동양적인 느낌을 근간으로 한 반추상화 작업을 하였다. 이후 미국으로 간 뒤에는 당대 뉴욕 화풍을 받아들이면서 완전히 추상화풍으로 전환하였다.
1946년-1949년 사이에 서울대학 미술대 교수를 역임한 김환기는 1947년 유영국·이규상과 함께 신사실파라는 미술단체를 결성, 52년에는 홍익대 미술대 교수가 되었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25 ~ 44살 동안 5번의 전시회를 하다가, 1956년 44세의 나이에 파리에서 예술을 하기로 결심한다. 프랑스 파리와 니스 그리고 벨기에의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가졌으며, 프랑스 라디오 방송에도 출연했다. 이후 3년간의 프랑스 생활을 마치고 1959년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귀국 후 다시 홍익대학교교수가 되었으며, 초대 예술원 회원, 한국미술협회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1963년 제7회 상파울루 비엔날레 한국 대표로 참가하여 명예상을 수상했다. 비엔날레 참석을 계기로 뉴욕으로 건너가 11년간 록펠러 3세가 설립한 아시아 소사이어티의 재정적 후원을 받으며 뉴욕에 정착한다. 여기서 김환기의 대표작인 전면점화가 탄생하였다. 그러던 중 1970년 한국일보사 주최 〈제1회 한국미술대상전〉에 그 유명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작품을 출품하고 대상을 받기도 했다.
♤작가들과 친해서 술 한 잔에 장정이나 삽화를 그려넣어 줬다고 한다. 책을 좀 모아본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수필집이나 시집 같은 경우에는 김환기의 삽화나 장정이 들어가면 값이 많이 뛴다. 또한 대체적으로 그가 장정을 해준 작품들은 상당히 수준이 높은 편이다. 그러다 보니 그의 그림이 보인다는 뜻은 일종의 보증수표인 셈이다.
♤신장 187cm의 장신이었는데 큰 키와 가만히 작업하는 화가 특성상 목 디스크를 가져 평생을 고생했다고 한다.
♤달항아리 수집을 많이 했었다고 한다. 그래서, 잘 알려져있지는 않지만, 조선백자 중에서도 '달항아리'의 이름을 처음으로 붙인 사람이기도 하다.
♤2024년 9월, 거래된 한국 작가의 작품 중 가장 비싼 거래가를 기록한 회화 작품 10개 모두가 김환기 작가의 작품이 되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김환기 작가는 해외에서 생활하던 시절 생활고에 시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