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리띠(서각대 犀角帶 무소뿔) × 2
; 상복(常服)에 매는 요대(腰帶)
명나라에서는 공복에 청색 가죽으로 만들고 띠 끝에 타미를 달아 늘어뜨리는 ‘요대腰帶’를 사용하면서, 요대에 장식하는 띠돈으로 1품은 옥을 사용하고, 2품은 서각犀角, 3·4품은 금여지金荔枝, 5품 이하는 오각烏角을 쓴다고 하였다.
♤조선에서는 1품은 서각대犀角帶, 2품 이하 정3품은 여지금대荔枝金帶, 종3품 이하는 흑각대黑角帶를 사용하도록 하였고, 그 후 성종 대의 『경국대전經國大典』에도 동일한 내용으로 기록되었다. 그 외에 김성일金誠一(1538~1593)의 『학봉집鶴峯集』에 실린 1590년 기록에 따르면 공복에는 금金과 각角, 두 종류의 ‘혁대革帶’가 있다고 하였다. 한편, 문무백관의 공복용 야자대뿐 아니라 전악典樂과 악사樂師·악공樂工 등의 관복 허리띠로도 야자대를 사용하였다.
◇상복(常服) - 왕이나 백관이 평상시 집무 중에 입던 옷. 1610년 이후에는 바로 아래의 시복으로 명칭이 바뀐다.
◇시복(時服) - 문무백관이 입시할 때나 공무를 볼 때 입던 옷. 위의 상복에서 명칭이 바뀐 것으로 1610년 5월 경부터 시복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관복과는 달리 흉배가 없다. 원래 다양한 색상의 시복이 있었으나 흑색과 홍색을 거쳐 담홍색으로 통일되었다.
♧허리띠 - 한자로 대帶. 대구帶鉤(띠고리, 교구. 일종의 버클)가 달린 것도 있었다. 교구는 버클과 마찬가지로 허리띠를 잇는 역할을 하는데, 종류에 따라 화려한 교구와 밋밋한 교구가 같이 있는 허리띠도 있다. 이 경우는 화려한 교구를 앞에 둔다. 신분에 따라 옷감과 색이 정해지기도 하였으며, 폭이 넓거나 금속으로 만들고 화려한 장식을 드리운 장식성 허리띠가 있는가 하면 폭이 좁아 가느다란 허리띠도 있었고, 실을 엮어서 만든 사대絲帶(실띠)도 있었다. 고분벽화를 보면 묶는 위치가 앞이든 옆이든 뒤든, 어떻게 묶든 그런 건 상관 없었다. 당연하지만 고름이 생기기 전에는 상의 속옷을 허리띠로 여몄다. 행여나 허리띠로 속옷을 여미는 것을 보고 왜색으로 치부하지는 말자. 조선시대 이전의 한복도 한복이다.
세조대 - 허리띠의 일종. 가느다란 끈에 술이 달려있다. 도포나 쾌자의 매력포인트.
광대 - 철릭이나 구군복 위에 착용한 폭 넓은 허리띠. 가느다란 고름이 달려있다.
전대
각대
옥대
서대
조아
전대(戰帶) - 전대띠라고도 한다. 철릭이나 구군복 위에 착용한다.
대대 - 폭이 넓은 허리띠. 복식에 따라 묶는 법이 다른데, 쌍고름으로 묶기도 했다. 궁중 예복이나 조복에 입는 대대도 있는데, 그건 허리띠에 천이 늘어져 있다.
요대
도포끈
광다회
동다회
금제 허리띠 - 삼국시대에 상류층이 사용했던 금제 장식 허리띠.
포백대
과대
금은과대
교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