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신도(山神圖)
산신도는 산의 신령인 산신을 그린 불화로, 민간신앙의 대상이던 산신이 불교에 편입되면서 제작되었다. 주로 사찰 내 삼성각(三聖閣)이나 산신각에 봉안된다.
산신은 산왕(山王), 산령(山靈), 산군(山君)이라고도 하며, 일찍부터 민간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불교에 산신신앙이 편입되면서 의식집인 『법계성범수륙승회수재의궤(法界聖凡水陸勝會修齋儀軌)』(1573)를 비롯한 불교 문헌에 16세기부터 꾸준히 산신에 대한 기록들이 보인다. 산신도는 현전하는 작품들로 미루어 볼 때 조선 후기부터 본격적으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산신도는 주로 사찰 내 삼성각에 치성광여래도(熾盛光如來圖)·독성도(獨聖圖)와 함께 봉안되거나 산신각에 단독으로 봉안되었다. 산신은 자식을 점지해 주고 길흉화복을 관장하는 것으로 여겨져 많은 사람들이 신앙하였으며, 그로 인해 조선 후기 이후 대부분의 사찰에 산신상과 함께 산신도가 모셔졌다. 산신도의 도상은 대체로 깊은 산과 골짜기를 배경으로 마치 신선과도 같이 수염이 길고 백발인 노인형의 인자한 산신이 호랑이에 기대 앉아 있고, 간혹 시자(侍者)들이 차를 달이거나 공양물을 들고 함께 등장하기도 한다. 드물게 호랑이를 타고 있는 산신을 표현한 경우도 있다. 이 밖에도 사례가 많지는 않지만 여성형, 호랑이를 대동하지 않은 제왕형이나 투구를 쓰고 무장을 한 신장형, 그리고 문인관료 혹은 학자형, 승려형, 그리고 남녀가 함께 등장하는 부부형의 산신도도 종종 제작되었다.
대부분의 산신도에 산신과 함께 주요하게 등장하는 호랑이는 산신의 사자나 화신격의 의미를 지닌다. 백수의 왕인 호랑이는 산신도에서는 마치 고양이처럼 귀엽고 장난스런 표정으로 그려지는데, 민간 화풍으로 그려진 까치호랑이 그림의 호랑이를 연상시킨다. 20세기 이후에는 일본 호랑이 그림의 영향을 받아 이빨을 드러내고 포효하는 무서운 모습의 호랑이로 변모하기도 하였다.
산신은 주로 붉은색 옷을 입고 머리는 상투를ㅂ 틀거나 민머리이며, 원유관 혹은 통천관을 쓰거나 치포관(緇布冠: 상투에 씌우는 작은 관) 위에 투명한 탕건을 쓰는 등 다양한 형태의 관모를 썼다. 손에는 대개 깃털부채, 파초선, 불로초, 불자(拂子: 짐승의 털이나 마 등을 묶어 자루 끝에 매단 것으로 주로 설법할 때 손에 드는 지물)를 들고 있으며, 대동하는 시자들 역시 공양물로 복숭아·유자·석류·모란꽃 등 길상의 의미를 지닌 것들을 들고 있다. 이러한 요소들은 산신의 성격을 명확히 드러내는 상징물의 역할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