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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대선사지진영 (西山大禪師之眞影) #서산대사 휴정(休靜, 1520~1604)은 평남 안주 출신으로 호는 청허(淸虛)이고, 서산(西山)인 묘

유담강 2024. 9. 22. 08:16

#서산대선사지진영 (西山大禪師之眞影)
#서산대사 휴정(休靜, 1520~1604)은 평남 안주 출신으로 호는 청허(淸虛)이고, 서산(西山)인 묘향산에 오래 머물렀으므로 서산대사(西山大師)라고 한다. 9세에 어머니를, 10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안주 군수를 따라 한양에 가서 12세에 성균관에 입학했다. 15세에 과거에 응시했으나 낙방하고 지리산으로 들어가 부용 영관(芙蓉靈觀, 1485~1571)을 스승으로 모시고 10여 년 동안 수행했고, 영관의 법을 이어받은 후 금강산 · 묘향산에서 수행했다.

경술년(1550년) 가을에 나는 금강산 향로봉에 있었다. 어느 날 묘향산에서 왔다는 한 수행승이 부처와 중생은 무엇이 다르고, 번뇌는 왜 일어나는지를 몹시 간절하게 묻기에 나는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답했다.

불성을 보려거든
마음이 바로 불성인 줄 알고
3도(途, 지옥 · 아귀 · 축생의 생존)를 벗어나려거든
마음이 바로 3도인 줄 알라.

정진이 바로 석가모니
청정한 본성이 바로 아미타불
밝은 마음이 문수보살
원만한 행위가 보현보살
자비가 관세음보살
희사(喜捨)가 대세지보살이니라.

성내는 마음이 바로 지옥
탐욕이 바로 아귀
어리석은 마음이 축생
음욕과 살생 또한 그러하니라.

일어나는 마음이 천마(天魔)
일어나지 않는 것이 음마(陰魔)
일어나기도 하고 일어나지 않기도 하는
그것을 번뇌마(煩惱魔)라고 한다.
허나 우리의 바른 법 안에는
본래 그런 것 없느니라.

그대가 그런 줄 알았거든
속히 금강의 칼을 잡고
한 생각 속으로 빛을 돌리면
모든 현상이 다 환상이 될 것이다.

환상 또한 병이 되니
모름지기 한 생각 놓아버려라.
놓아버리고 또 놓아버리면
본래의 청정한 본성이 그대로 드러날 것이다.

<淸虛堂集 제4권, 禪敎偈語>

휴정은 33세 되던 해(1552년, 명종 7년)에 새로 부활된 승과에 합격하여 대선이 되었고, 3년 만에 선교양종판사가 되었으나 2년 후에 그 직책을 사양하고 금강산으로 들어갔다. 휴정은 40대 후반에서 60대 후반에 이르는 동안 묘향산을 중심으로 제자들을 지도했는데, 그에게 1천여 명의 제자가 있었다고 한다. 그가 73세 되던 해(1592년, 선조 25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평안도 의주로 피난한 선조는 휴정을 팔도도총섭(八道都摠攝)에 임명했다. 이에 휴정은 묘향산에서 나와 전국 승려들에게 총궐기를 호소하는 격문을 방방곡곡에 보내 승군(僧軍)을 모집했다.

그리하여 평남 평원 법흥사(法興寺)에 1천5백여 명의 승군이 집결했고, 그의 제자 유정(惟政)도 1천여 명의 승군을 이끌고 관동 지방에서 와서 도총섭의 승군과 합세했다. 유정은 승군의 대장이 되어 일선에서 실전을 지휘하여 평양성 탈환에 공을 세웠다. 2년 후 휴정은 그의 제자 유정과 처영(處英)에게 모든 일을 맡기고 묘향산으로 들어갔다. 85세 되던 해(1604년) 정월, 휴정은 묘향산 원적암(圓寂庵)에서 자신의 영정 뒤에 다음과 같이 썼다.

승려 휴정의 영정 글귀
八十年前渠是我
80년 전에는 그가 나이더니
八十年後我是渠
80년 후에는 내가 그이구나.

그러고는 결가부좌한 채 입적했다. 저서에는 《선가귀감(禪家龜鑑)》 · 《청허당집(淸虛堂集)》 등이 있다. 《선가귀감》은 경전과 어록 중에서 수행의 지침이 될 가장 요긴하고 간절한 부분을 가려 뽑은 선학(禪學) 입문서이다. 《청허당집》의 1권에는 시 600여 수, 2권에는 서(書)로서 누구누구에게 드리는 글 또는 답하는 글 32편, 3권에는 서(書) · 기(記) · 비명(碑銘) · 행적(行蹟) 등이 있고, 4권에는 소(疏) · 모연문(募緣文) · 〈선교게어(禪敎偈語)〉 · 잡저(雜著) · 〈심법요초(心法要抄)〉 · 〈선교석(禪敎釋)〉 등이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