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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미 #민영익 '난'

유담 강(Yudam Kang) 컬렉션. 2022. 8. 23. 05:59

#운미난
#민영익(閔泳翊 1860~1914)
본관은 여흥(驪興), 호는 #운미(芸楣)·죽미(竹楣)
명성황후의 조카가 됨.
조선 말기 민씨세도정권의 중추적 인물. 임오군란의 수습책으로 제물포조약이 체결된 후 일본으로 사절단을 파견할 때 김옥균과 비공식사절로 동행하여 일본의 개화된 문물을 보고 돌아왔다. 이후 권지협판교섭통상사무로 톈진[天津]에 파견되어 해관사무를 교섭했다.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자 조선정부는 민영익을 전권대신으로 하여 보빙사를 미국에 파견했다. 그가 미국 방문기간 동안 얻은 지식들은 뒤에 우정국 설치, 경복궁의 전기설비, 육영공원, 농무목축시험장 설립·운영 등의 실현 계기가 되었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 후 상하이로 망명하여 그곳에서 죽었다. 글씨와 그림에 조예가 깊었다.
민영익은 상해 서화가들과 시서화로 교유하며 독자적인 운미란(芸楣蘭)을 완성하였는데, 이는 비수(肥瘦)와 삼전(三轉)이 없는 난엽(蘭葉)이 곧으면서 힘 있게 곡선을 그리다 끝이 뭉툭한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화풍은 이하응(李昰應)의 석파란(石坡蘭)과 함께 조선미술전람회를 포함한 근대 한국 화단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천심죽재주인사(千尋竹齋主人寫)
오창석이 1895년 8월 새겨준 ‘천심죽재(千尋竹齋)’라는 인장의 변관에 “운미 선생이 기거하는 곳을 천심죽재라 하였다”